군산 뒤뜰에 남은 역사

발산초등학교 뒤뜰의 뜻밖의 유산
전북특별자치도 군산시 개정면 바르메길 43에 자리한 발산초등학교 뒤뜰에는 석탑과 석등, 부도, 석상 등 여러 석조 유물이 모여 있다. 학교의 밝은 풍경과 오래된 유물이 나란히 놓여 있어 군산의 근대사를 돌아보게 하는 공간이다.
운동장에는 초록빛 잔디가 펼쳐지고 원색의 학교 건물이 파란 하늘과 어우러진다. 운동장 옆길을 따라 본관 뒤편으로 들어가면 분위기는 달라진다. 오랜 세월을 견딘 석조 유물들이 모습을 드러내고, 그 곁에는 ‘시마타니 금고’로도 알려진 구 일본인 농장 창고가 남아 있다.
이 유물과 창고는 학교의 설립 과정뿐 아니라 일제강점기 군산에서 운영된 일본인 농장의 역사와 맞닿아 있다.
학교 터에 있었던 시마타니농장
발산초등학교는 1947년 설립됐다. 학교가 들어선 터는 일제강점기에 일본인 시마타니 야소야가 운영했던 시마타니농장의 부지였다. 현재 학교 뒤뜰에 석조 유물과 금고용 창고가 함께 남은 배경도 여기에 있다.
시마타니 야소야는 일본 야마구치현 출신으로, 일본에서 양조업에 종사했다. 그는 술의 원료로 사용할 값싼 쌀을 찾아 군산에 왔으며, 1903년 군산에 정착해 자신의 이름을 딴 농장을 세웠다. 이후 군산의 토지를 사들이며 농장 규모를 확대했다.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이 군산 일대에 농장을 세워 운영한 주요 목적은 쌀을 일본으로 가져가는 데 있었다. 1908년 전주와 군산을 연결한 번영로, 1912년 개통된 군산선 철도, 군산항 부두에 설치된 뜬다리는 쌀을 운반하는 대표적인 통로로 이용됐다.
농장을 통해 경제력을 확보한 시마타니는 이를 바탕으로 고미술품과 여러 유물을 수집했다. 그의 저택 정원에는 각지에서 모은 석조 유물이 전시됐고, 견고하게 지은 금고용 창고에는 다양한 고미술품이 보관됐다. 오늘날 학교 뒤뜰의 유물과 창고는 당시 농장의 규모와 수집 활동을 보여주는 흔적으로 남아 있다.
균형미를 갖춘 발산리 오층석탑
석조 유물 전시장에는 역사적·예술적·학술적 가치를 인정받아 보물로 지정된 유물 두 기가 있다. 그중 하나가 고려시대에 화강암으로 만든 발산리 오층석탑이다. 높이는 6.4m이며, 본래 2단 기단 위에 5층의 탑신을 올린 구조였으나 현재는 한 층이 사라져 4층만 남아 있다.
아래위 기단의 모서리와 가운데에는 기둥 형태의 조각이 새겨져 있다. 남아 있는 4층의 탑신 역시 각 층 몸돌의 네 모서리에 기둥 모양을 표현했다. 전체 구조는 단순하지만 평면적인 돌에 입체감을 더하려는 조형적 특징이 확인된다.
지붕돌은 경사가 급하고 추녀 끝이 조금 들려 있어 부드러운 곡선미를 보여준다. 지붕돌 아랫부분에는 3단 받침을 두어 고려시대 석탑의 전형적인 모습을 나타낸다. 탑 꼭대기의 상륜부가 일부 남아 있지만, 이는 건립 당시의 부재가 아니라 후대에 보완된 것으로 보인다.
발산리 오층석탑은 전체적인 비례와 균형이 안정적이며, 고려시대 석탑 특유의 간결한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중요한 유물이다.
용과 사천왕을 새긴 발산리 석등
또 하나의 보물은 발산리 석등이다. 석등은 사찰의 탑이나 금당 앞에 세우거나 왕릉과 사대부 무덤 앞에 설치했다. 실제로 어둠을 밝히는 기능을 했을 뿐 아니라 종교적이고 상징적인 의미도 지녔다.
불교에서 등불은 부처의 지혜를 상징한다. 중생의 무지와 어둠을 밝히는 신성한 빛으로 여겨졌다. 무덤 앞에 세운 석등은 장명등이라고 불렀으며, 죽은 사람의 영혼을 위로하고 안식처를 지키는 의미를 담았다.
발산리 석등은 불을 밝히는 화사석을 중심으로 구성된다. 아래에는 화사석을 받치는 3단의 받침돌이 놓였고, 위에는 지붕돌과 머리 장식을 올리는 구조를 갖췄다. 받침 가운데 기둥은 사각형의 네 모서리를 둥글게 다듬었으며, 표면에는 구름 속에서 움직이는 용의 모습을 새겼다.
가운데 기둥에 용을 조각한 이 같은 형태는 우리나라에서 하나뿐인 독특한 모습으로 전해진다.
화사석은 사각형의 네 모서리를 둥글게 깎아 전체적으로 팔각을 이룬다. 각 면에는 네 개의 창과 사천왕상이 번갈아 배치돼 있다. 사천왕은 불교의 법을 지키는 신으로, 화사석에 새긴 사천왕상에는 등불을 보호한다는 의미가 담겼다.
팔각 지붕돌은 각 모서리의 선이 뚜렷하다. 곡선을 그리는 처마는 여덟 귀퉁이에서 힘차게 치켜올라 시원한 인상을 준다. 꼭대기에는 연꽃무늬를 새긴 머리 장식 받침대가 마련돼 있으나, 머리 장식 자체는 현재 남아 있지 않다.
발산리 석등은 여러 구조적 특징을 종합할 때 통일신라시대에서 고려시대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각 부재의 구성과 세부 조각은 두 시대의 양식이 변화하던 흐름을 살펴볼 수 있게 한다.
육각부도와 다양한 석조 유물
두 기의 보물 외에도 뒤뜰에는 눈여겨볼 만한 석조 유물이 여럿 있다. 발산리 육각부도는 그중에서도 독특한 형태로 시선을 끈다. 부도는 승려의 사리나 유골을 안치한 불교식 무덤인 사리탑을 뜻하며, 공식 명칭으로는 승탑이라고 한다.
발산리 육각부도는 구조적 특징을 근거로 고려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보고 있다. 일반적인 형태와 구별되는 육각 구조가 특징이며, 전체 구도와 조각 수법도 뛰어난 문화유산으로 평가된다.
보물로 지정된 석등 외에 석등 세 기가 더 남아 있다. 이 가운데 한 기는 다른 석등과 달리 석회암으로 만들어졌다. 일반적으로 석조 유물에는 화강암이 많이 사용되지만, 이 석등은 군산과 멀지 않은 익산시 여산면에서 생산되는 석회암을 재료로 삼았다.
전시장에는 돌로 만든 양 조형물인 석양을 비롯해 문인석, 망주석, 거북이 석상, 맷돌, 초석, 물을 담는 돌 그릇인 석조도 놓여 있다. 서로 다른 쓰임과 형태를 지닌 유물이 한 공간에 모여 있어 당시의 석조 기술과 조형 방식을 비교해 볼 수 있다.
전시 공간 입구에 자리한 석양 두 기는 본래 왕실 무덤에만 설치했던 조형물이다. 무덤으로 사악한 기운이 들어오는 것을 막는 수호신의 역할을 상징했다. 입구를 지키듯 서 있는 두 석양은 유물 전시 공간에 묵직한 인상을 더한다.
1920년대에 지은 농장 금고 창고
석조 유물 인근에는 발산리 구 일본인 농장 창고가 남아 있다. 이 건물은 1920년대 시마타니농장의 대지주가 귀중품을 보관하기 위해 건립했다. 반지하와 지상 2층으로 구성됐으며 철근콘크리트로 지어졌다.
창고 입구에는 미국제 철제 금고문이 설치돼 있다. 각 층의 창문에는 철창과 철문을 함께 단 이중 잠금장치가 마련됐다. 철제 문에는 미국에서 제작됐음을 나타내는 영문 표기가 선명하게 남아 있다.
이곳에는 농장 운영에 사용한 주요 서류와 현금, 수집한 고미술품 등이 보관됐다. 단순히 농산물을 쌓아 두는 일반 창고가 아니라, 농장의 중요 자산을 지키는 대형 금고와 같은 역할을 했던 건물이다.
해방 이후 창고에 있던 유물은 미군정청이 회수했고, 이후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옮겨져 보관됐다. 주요 유물에는 고려청자, 분청사기, 조선백자와 일본 서화류, 도자기, 금속공예품 등이 포함돼 있다. 이 가운데 일부는 국립중앙박물관 상설 전시를 통해 공개되고 있다.
창고 출입문 위쪽에는 과거 다른 건물과 연결돼 있던 흔적이 남아 있다. 당시 창고는 농장주 저택 내부에서 복도를 통해 드나들 수 있는 은밀한 구조였다. 저택은 사라졌지만 창고 벽의 연결 흔적은 예전 건물 배치를 짐작하게 한다.
수탈의 역사와 문화유산이 교차하는 곳
발산초등학교 뒤뜰은 고려시대와 그 전후의 석조 유물, 일제강점기에 조성된 일본인 농장 창고가 한자리에 남아 있는 공간이다. 오래된 석탑과 석등에서는 전통 석조 문화의 수준을 확인할 수 있고, 견고한 콘크리트 창고에서는 농장주의 경제력과 당시 군산의 역사적 상황을 읽을 수 있다.
교정의 밝고 평온한 풍경 뒤편에 자리한 유물들은 서로 다른 시대의 이야기를 전한다. 석조 유물은 본래의 자리를 떠나 이곳에 모였고, 농장의 저택은 사라진 채 금고용 창고만 남았다. 관람객의 시선은 정교하게 다듬은 돌의 선과 굳게 잠긴 철문을 차례로 따라가며 군산에 축적된 시간의 층위를 마주하게 된다.
발산리 유물과 구 일본인 농장 창고는 전통문화의 가치와 일제강점기 수탈의 역사를 함께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군산 근대사를 이해하는 중요한 유산이다.
장소 정보
| 명칭 | 군산 발산리 오층석탑과 발산리 석조 유물, 구 일본인 농장 창고 |
|---|---|
| 위치 | 전북특별자치도 군산시 개정면 바르메길 43 발산초등학교 뒤뜰 |
| 주요 유산 | 발산리 오층석탑, 발산리 석등, 발산리 육각부도, 석등 3기, 석양, 문인석, 망주석, 거북이 석상, 맷돌, 초석, 석조, 구 일본인 농장 창고 |
| 역사적 배경 | 일제강점기 시마타니농장 부지로 사용됐으며 1947년 발산초등학교가 설립됨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