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창 남산마을 귀래정의 역사와 자연

순창 남산마을, 신말주 선생의 후손들이 지킨 고향
전라북도 순창군 순창읍 가남리 남산마을은 조선 초기 문신 신말주(1429~1503) 선생의 후손들이 대대로 살아온 세거지입니다. 마을은 산으로 둘러싸여 순창읍에서 보이지 않을 정도로 아늑하며, 고려 시대부터 순창 설씨 가문의 집성촌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신말주 선생이 이곳을 낙향지로 택한 이유는 부인 설씨의 고향이었기 때문입니다.
설씨 부인과 강천사 권선문첩
남산마을은 조선 초기 여성 필사본으로 보물로 지정된 설씨 부인(1429~1508)의 고향이기도 합니다. 그녀는 학식과 서화에 뛰어난 재원으로, 불교 억제 정책 속에서도 강천사를 재건하기 위해 시주를 권하는 글과 그림을 담은 '강천사 권선문첩'을 남겼습니다. 이 작품은 설씨 가문의 영향력과 부인의 예술적 소양을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입니다.
설씨부인·신경준 선생 유지와 역사적 자부심
남산마을 회관 앞에 주차 후 설씨부인과 신경준 선생 유지를 둘러보는 동선을 추천합니다. 유지에는 수많은 공적비와 기념비가 있어 순창의 역사적 자부심과 가문의 위상을 증명합니다. 이곳은 강천사 권선문비 건립 기록과 함께 조선 후기 실학의 거두 여암 신경준(1712~1781) 선생의 탄생을 기념하는 공간입니다.
여암 신경준 선생과 가문의 명예
여암 신경준 선생은 조선 후기 영정조 시대 문물제도 정비에 큰 역할을 한 실학자이며, 신말주 선생의 10대손입니다. 현재 유지에는 조선시대부터 후손들이 세거해 온 터를 보존하기 위해 1990년대 중반부터 안채 자혜당과 사당 남산사를 복원했습니다. 남산사에는 신말주 선생과 그의 후손 중 학문과 덕행이 뛰어난 인물들이 배향되어 있습니다.
귀래정과 신말주 선생의 충절
귀래정은 신말주 선생이 낙향 후 1456년 가남리 언덕 위에 지은 정자로, 중국 도연명의 '귀거래사'에서 이름을 따왔습니다. 신말주는 1454년 문과 급제 후 관직을 지내다 1455년 계유정난 당시 형 신숙주와 달리 관직을 버리고 순창으로 낙향해 귀래정을 짓고 후학을 양성했습니다. 귀래정 오르는 길목에는 설씨 부인이 남긴 '申府尹歸來亭' 암각서가 있어 남편에 대한 깊은 애정을 보여줍니다.
십로계와 은거 문화
신말주 선생은 순창에서 아홉 명의 노인과 함께 '십로계'를 결성해 귀래정에서 시를 읊고 학문을 논하며 전원생활을 즐겼습니다. 이 기록은 '십로계첩'으로 전해져 당시 사대부들의 은거 문화와 순창 향촌 사회의 단면을 보여줍니다.
여암 신경준 선생의 정원과 튤립
귀래정을 나와 여암 신경준 선생이 손수 가꾼 정원은 2022년부터 순창군에서 복원 중입니다. 1.4헥타르 규모에 수수꽃다리 등 2만 5,900주를 식재하고 백두대간 테마 산책로를 조성했으며, 2023년에는 1.6헥타르 부지에 배롱나무 등 4만 6천여 주를 심고 유아숲 체험원과 산림 놀이시설을 마련했습니다. 산책로 끝 전망대에서는 순창 읍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며, 권일송 시인의 시비도 자리하고 있습니다.
역사와 자연이 어우러진 순창 남산마을
남산마을과 귀래정 언덕에는 봄을 알리는 붉고 노란 튤립이 만개해 있습니다. 500여 년 전 신말주 선생이 심은 절개가 오늘날 꽃으로 피어난 듯한 모습입니다. 권력의 유혹을 뿌리치고 스스로를 지킨 선생과 예술로 그 길을 지킨 설씨 부인의 정신이 마을 곳곳에 스며 있습니다. 이번 주말, 역사와 자연이 공존하는 순창 가남리 남산마을을 걸으며 흔들리지 않는 삶의 향기를 느껴보는 것을 권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