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실학의 거목 고창 황윤석 생가 탐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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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실학파 황윤석 선생의 생가를 찾아서

전라북도 고창군 성내면 조동리에 위치한 이재 황윤석 선생의 생가는 조선 후기 실학을 대표하는 학자의 숨결이 고스란히 담긴 역사적 공간입니다. 황윤석 선생은 1791년 정조 15년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폭넓은 학문적 탐구를 이어간 박문학자로, 그의 생가는 전라북도 민속자료 제25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소박함 속에 깃든 학문의 깊이

생가는 부친 황전 선생이 세운 집으로, ‘만은재’라는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짚으로 덮인 황토 담벼락 사이로 ‘황윤석 생가’라는 명판이 걸린 대문채는 1970년대 철거되었다가 2005년 발굴조사를 통해 유구가 확인되었고, 2021년에 복원되었습니다. 봄기운이 완연한 마당 앞 사랑채는 장대석 기단 위에 4칸으로 조성되어 있으며, 정자 방과 툇마루가 돌출되어 있어 학문에 집중할 수 있는 조용한 공간임을 엿볼 수 있습니다.

사랑채와 문간채 사이에는 쪽문인 일각문이 설치되어 있으며, 문간채는 두 칸의 방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909년 일본군의 의병 토벌 당시 안채를 제외한 건물들이 소실되었으나, 같은 해 복원 작업이 이루어졌습니다. 안채는 6칸 규모의 초가집으로 남부지방 전형적인 가옥 형태를 띠고 있으며, 조상의 위패를 모신 벽감이 안채 대청 북쪽 툇간에 자리해 있어 독특한 구조를 자랑합니다.

황윤석 선생의 학문과 업적

황윤석 선생은 미호 김원행 문하에서 실학을 접하고, 홍대용, 신경준과 교류하며 성리학과 자연과학을 폭넓게 연구했습니다. 그는 석실서원학파의 중심 인물로, 율곡 이이와 우암 송시열의 학문을 존중하며 노론 낙론계 학풍을 따랐습니다. 300여 권에 달하는 저서를 남긴 그는 “군자는 한 가지 사물이라도 알지 못한 것을 부끄러워해야 한다”는 신념 아래 박학다식한 학문 체계를 구축했습니다.

그의 학문적 깊이와 저술량은 프랑스 백과전서파의 디드로에 비견되며, 21세기 지식 정보화 사회를 예견한 선각자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2007년 국립 전북대학교는 ‘이재연구소’를 설립해 그의 학문과 사상을 체계적으로 연구하며 한국 사회의 정신적, 문화적 발전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고택에서 느끼는 인문학의 울림

초가지붕을 유지한 생가는 기와를 얹으면 집안의 혈이 눌린다는 풍문에 따른 것으로, 소박하면서도 고즈넉한 분위기가 선생의 학문적 삶을 상징합니다. 이곳에서 선생이 걸어간 배움과 사색의 길을 떠올리며, 인문학이 우리 삶에 주는 깊은 울림을 다시금 되새겨볼 수 있습니다.

찾아가는 길

고창 황윤석 선생 생가는 전라북도 고창군 성내면 조동길 33에 위치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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