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촌은 밥상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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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촌은 밥상에서 시작된다

귀촌의 시작은 거창하지 않았다

귀촌 생활에서 공동체의 힘이 드러나는 순간은 반드시 크고 특별한 행사에서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제철 음식을 함께 만들고 한 상에 둘러앉는 평범한 시간이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누군가는 텃밭에서 거둔 채소를 가져오고, 누군가는 필요한 재료를 장만한다. 자연스럽게 칼을 잡고 음식을 만드는 사람도 있다. 각자 할 수 있는 일을 나누는 동안 식탁은 단순히 끼니를 해결하는 자리를 넘어선다. 함께 음식을 만들고 밥상을 나눈다는 사실은 낯선 지역에서도 혼자가 아니라는 감각을 만들어준다.

귀촌의 든든함과 즐거움도 이처럼 소박한 관계에서 생겨날 수 있다. 함께 밥을 지을 수 있고 기꺼이 한 상을 나눌 수 있는 이웃이 있다는 것은 새로운 지역에 뿌리내리는 데 중요한 힘이 된다.

아홉 여성이 운영한 특별한 식당

전북 완주군 고산면에는 ‘모여라땡땡땡’이라는 커뮤니티 식당이 있었다. 이곳은 9명의 여성이 함께 운영했으며, 요일에 따라 음식을 맡는 사람이 달라지는 방식으로 꾸려졌다.

운영자들의 생활과 활동 영역도 서로 달랐다. 농사를 짓는 사람과 전업주부가 있었고, 시장에서 일하는 사람과 지역에서 여러 활동을 이어가는 사람도 있었다. 서로 다른 배경을 지닌 이들은 정해진 한 사람에게 식당을 맡기지 않았다. 모두가 저마다의 방식으로 주인이 되어 공간을 운영했다.

요일마다 요리하는 사람이 달라지면서 밥상에도 각자의 생활이 자연스럽게 반영됐다. 직접 농사지은 재료가 음식이 되어 상에 오르고, 여러 사람이 역할을 나누어 공간을 유지했다. 식당 안에서는 음식을 만들고 나누는 움직임이 이어졌고, 밥상을 중심으로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밥을 파는 곳을 넘어선 공간

모여라땡땡땡은 단순히 밥을 만들어 판매하는 식당에 머물지 않았다. 운영자들은 필요한 운영비를 함께 마련하고 공간을 함께 지켰다. 자신이 농사지은 작물을 음식으로 내놓으며 생산과 조리, 식사의 과정을 하나의 자리에서 연결하기도 했다.

같은 공간도 사람에 따라 다른 의미를 가졌다. 누군가에게는 일을 하는 곳이었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지역 활동을 펼치는 무대였다. 집 밖으로 나와 사람들을 만나는 계기가 된 이도 있었다. 한 끼의 밥은 서로 다른 생활을 이어주었고, 그 연결은 자연스럽게 공동체의 모습으로 발전했다.

식당 운영에 필요한 비용과 노동을 함께 부담한다는 점도 중요한 특징이었다. 한 사람에게 책임을 집중하기보다 구성원들이 각자의 몫을 맡았다. 함께 돈을 내고, 함께 음식을 만들고, 함께 공간을 지키는 방식이었다.

공동경비부엌에 담긴 두 가지 뜻

책 제목에 사용된 ‘공동경비부엌’에는 중의적인 의미가 담겼다. 구성원들이 공동의 경비인 비용을 마련한다는 의미와 공동의 공간을 함께 경비하고 지킨다는 의미가 겹쳐 있다.

이 표현은 모여라땡땡땡의 운영 방식을 압축해 보여준다. 공간을 유지하려면 비용이 필요하고, 밥상을 차리려면 재료와 노동이 필요하다. 식당을 지속하려면 공간을 돌보는 사람도 있어야 한다. 운영자들은 이러한 일을 함께 나누며 부엌을 지켜갔다.

공동경비부엌은 결국 함께 살아가는 데 필요한 비용과 수고, 책임을 여러 사람이 나누는 공간이었다. 밥을 매개로 모인 사람들은 각자의 형편과 역할에 따라 공동의 자리를 유지했다.

생활의 접점이 관계를 만든다

귀촌은 거주지를 옮기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새로운 장소에서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가는 과정도 함께 시작된다. 마을에 아는 사람이 생기고, 동네에서 인사를 나누며, 다른 사람과 무언가를 함께 해보는 일이 차곡차곡 쌓인다.

밭에서 거둔 작물을 이웃과 나누어 먹는 일도 그런 과정에 포함된다. 처음에는 짧은 인사와 작은 나눔에 불과해 보이지만, 생활 속 접점이 반복되면 낯선 지역은 점차 살아갈 수 있는 공간으로 바뀐다. 서로의 일상을 알고 밥상을 나누는 관계가 생기면서 지역생활을 이어갈 마음도 단단해진다.

이 과정에서 함께 밥을 먹는 일은 가장 자연스러운 관계 형성 방식 가운데 하나로 나타난다. 특별한 자격이나 복잡한 절차 없이도 같은 음식을 만들고 나누는 동안 대화가 이어지고 서로의 생활을 이해할 기회가 생긴다.

공동체는 평범한 한 끼에서 자란다

공동체를 만들겠다는 거창한 선언이 먼저 필요한 것은 아니다. 맛있는 제철 음식을 먹고 싶다는 마음, 함께 먹을 사람이 있다는 사실, 여럿이 만들면 조금 더 즐겁다는 경험이 출발점이 될 수 있다.

함께 장을 보고 재료를 손질하며 음식을 만드는 과정에서는 자연스럽게 역할이 나뉜다. 완성된 음식을 가운데 두고 한동안 함께 앉아 있는 시간은 관계를 더욱 가깝게 만든다. 계획이나 구호보다 먼저 밥상이 사람들을 묶어주는 셈이다.

귀촌에서 필요한 공동체는 특별한 조직보다 일상의 식탁에서 먼저 모습을 드러낼 수 있다. 제철 재료를 나누고 음식을 함께 준비하는 작은 행동이 반복되면서 서로 의지할 수 있는 관계가 형성된다.

좋은 귀촌을 지탱하는 사람들

농촌의 여유로운 속도와 탁 트인 자연은 귀촌을 떠올릴 때 주목받는 요소다. 그러나 실제 생활을 이어가는 데에는 함께 음식을 만들고 밥상을 나눌 사람이 있다는 점도 중요하다. 자연환경만으로 채울 수 없는 생활의 부분을 이웃과의 관계가 받쳐주기 때문이다.

‘공동경비부엌 모여라땡땡땡’은 농촌에서 생활하는 구체적인 모습과 함께 사람들이 관계를 만들고 공간을 유지하는 방식을 보여준다. 키키, 별나, 시루, 바비, 수작, 햇살, 슨배, 로제, 하하 등 9명이 이름을 올렸으며, 2021년 소일에서 출간됐다.

모여라땡땡땡의 사례가 보여주는 핵심은 분명하다. 사람들은 비용과 노동을 나누고, 각자가 가진 재료와 능력을 보태며, 한 공간을 함께 지켰다. 그 중심에는 언제나 음식을 만들고 밥을 나누는 일이 있었다.

좋은 귀촌은 살 곳을 정하는 것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함께 살아갈 사람을 만나고, 그들과 한 끼를 나누는 평범한 밥상에서 비로소 시작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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